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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강의에서 오늘날 이미지가 범람하며 빚어내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을 소개하였는데 더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꽤 있었습니다. 누구나 편한 마음으로 함께 읽으며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열린 공간에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 봅니다. 교회 안에 서서 찬송을 부른다고 우리가 거룩하게 되지 않는 것은 마치 외양간에 서서 말울음 소리를 낸다고 우리가 말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 유진 피터슨 The life is somewhere else.
가면의 고백이라는 모순된 제목은, 나라는 사람이 가진 가면은 살에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는 가면이며, 그러한 살에 달라붙는 가면의 고백에 참으로 진실한 고백은 있을 수 없다는 역설에서 나온것이다. 인간은 절대로 고백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다. 단지 드물게도 살에 깊이 박혀든 가면만이 그것를 성취할 수 있게 한다.
-미시마유키오-
Prosperity Paradox
We must always take sides. Neutrality helps the oppressor, never the victim. Silence encourages the tormentor, never the tormented. -Elie Wiesel All that is gold does not glitter,
아프간에 사로잡힌 인질들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상당부분 정당한 비난처럼 들린다. 맞는 소리다. 그들은 살아 돌아오더라도 고개 숙여 반성해야 한다. (정말???) 그런데 이런 소리를 듣자면 내가 대신 억울한 마음이 든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저들을 그저 한 무리의 "trouble maker"로 처분해 버려도 되는 걸까. 정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가? 저들이 기꺼이 위험을 무릎쓰고(비록 그것이 미숙했고, 용의주도하지 못하였으며, 많은 이들에게 우려를 끼치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스런 결과를 초래했지만) 실천하려고 했던 "남을 위한 삶", 그런 숭고한 정신은 정말 전혀 값을 쳐줄 무엇이 아니란 말인가? 남을 위해 살고자 애써보지 않았고 오직 자기의 생존과 실현에 갇힌 우리의 눈이어서, 저자들의 자취에 그런 가치가 아무리 반짝여도 짜증스런 호기 이상으로 보아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저들이 다 잘했다는 말도, 그래서 이런 상황의 전말을 그저 덮어주자는 말도 아니다. 그래도 지금 상황이라면 인질들에 대한 비난은 좀 참아야 하지 않을까. 그냥 내가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하는 소리다. ‘인생은 꿈꾸는 대로,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오레곤의 농장에서 목가적인 삶을 꿈꾸던 엘런은 함께 꿈을 일구어 갈 동반자로 생각했던 남편의 본 모습이 드러나면서 어두운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마약 중독자인 남편의 폭력적인 성벽性癖으로 고통 받던 그녀는 결국 남편과 꿈을 등지고 아이들과 함께 농장을 떠난다. 그러나 그녀가 출애굽에 비유한 이 선택이 반드시 평탄한 삶으로 인도하는 출구는 아니었다. 혼자서 세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녀에게 삶은 위안이기보다 계속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을 남편의 영향으로부터 절연시키려는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제 청소년기에 다다른 막내딸에게 심각한 알코올과 마약 중독의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엘런이 막내딸 소피와 함께 중독의 문제를 극복해 가는 여정을 그려가기 시작한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얼마나 결정적인 전기가 될 수 있는지 이 책은 극적인 대비를 통해 확인시킨다. 불행한 삶과 악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남편으로 인해 긴 터널에 들어선 엘런은 이제 조력자와 멘토가 되어준 페이라는 여성을 통해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내면을 펼쳐 성찰하며 빛을 찾아간다. 그러나 실제의 삶에서 중독이든 관계의 문제든 반짝이는 혜안이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고 깔끔한 절단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소위 ‘회복의 과정’이 얼마나 지독할 정도로 우리의 인내심을 요구하는지 보여주느라 여념이 없다. 이 책의 마지막 후기에서 낭만적 해피엔딩의 유혹과 인위적인 비약의 흔적을 없애려는 저자의 철저한 노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너도 그래? 나도 그런데.’라는 말과 함께 친구가 된다. 엘런 역시 편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 자신 안에 심어놓은 죄책감과 수치심, 그리고 부인(denial)과 같은 방어기제에 대한 중독을 자각하고서야 비로소 딸을 이해하고 건강할 팔로 끌어안을 힘을 얻게 된다. 저자는 이제 단지 모성애의 발로에서 딸의 ‘제길 찾기’를 강요하는 엄마의 자리로부터 자신의 회복을 통해 딸을 위한 정서적 토양을 마련해 주는 친구 같은 엄마의 자리로 옮아가게 된다. "만일 부모인 우리가 아이들 스스로 어려운 질문에 직면하길 원한다면 우리 역시 똑 같은 열정과 정직함으로 우리 자신의 내면을 직시해야 한다." 이 책은 중독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족과 관계, 진정한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단 중독과 자녀의 문제라는 협곡에 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끝없이 산을 오르며’ 어두운 숲을 헤쳐온 저자의 정직한 내면의 고백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할 따뜻한 실마리를 얻게 될 것이다. 모쪼록 이 책이 산을 오르고 있는 모든 이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그냥 스키나 탈 것을. 보드를 배우겠다고 고생을 사서 했다. "발끝을 보지 말고 시선을 멀리 두라"는 강사의 말. 되짚어보니 참 좋은 말이다. 우리 인생에서 발끝에만 시선을 두다가 넘어질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고작 발끝만 보다가... ![]() ![]() ![]() Love of mine some day you will die But I'll be close behind I'll follow you into the dark No blinding light or tunnels to gates of white Just our hands clasped so tight Waiting for the hint of a spark If heaven and hell decide That they both are satisfied Illuminate the no's on their vacancy signs If there's no one beside you When your soul embarks Then I'll follow you into the dark In Catholic school as vicious as Roman rule I got my knuckles brusied by a lady in black And I held my tongue as she told me "Son fear is the heart of love" So I never went back If heaven and hell decide That they both are satisfied Illuminate the no's on their vacancy signs If there's no one beside you When your soul embarks Then I'll follow you into the dark You and me have seen everything to see From Bangkok to Calgary And the soles of your shoes are all worn down The time for sleep is now It's nothing to cry about Cause we'll hold each other soon In the blackest of rooms If heaven and hell decide That they both are satisfied Illuminate the no's on their vacancy signs If there's no one beside you When your soul embarks Then I'll follow you into the dark Then I'll follow you into the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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